보는 것과 보이는 것
● 23세에 혼자 되신 어머니의 유복녀로 태어난 딸이 있었다.
어머니의 희생적인 수고로 유학도 하고, 나중에는 저명한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 고등학교 이후 교회를 다녀던 딸은 어머니의 권유로 절에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잠시 경내를 둘러 보는데, 실망이 컸다.
보살들이 모여서 다른 절에 스님을 험담을 하고,신도 회장이 다가와서는 처음 본 자신에게 아들 대학 입학을 청탁하고,
회의실에서는 다투는 소리가 문 밖으로 새어 나왔다.
● 너무 화가 난 딸은 어머니의 손을 끌고 집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그 때 조용하기만 하던 어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 “나는 평생 절에 다니면서 부처님만 봤는데, 너는 딱 하루 절에 와서는 참 많이도 봤구나.”
이 말에 딸 교수는 무너졌다
생각없이 절에 다닌다고 생각했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보는 수준과 자기의 보는 수준은 하늘과 땅보다 큰 것이었다.
누구든 자기의 수준만큼만 보이는 것입니다.
● 우리는 많은 것을 보며 삽니다.
그런데 대게 내 눈에 보인다고 하는 것은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 먼 것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가까이 있는 것이 잘 보입니다.
자꾸 거짓이 보인다면 내가 거짓에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꾸 교만이 보인다면 내가 교만에 가까이 있다는 것 입니다.
사기꾼의 눈에는 사기꾼이 가장 잘 보이는 것입니다.
섬기는 사람옆으로 가 보십시오.섬김만 보입니다.
기도의 사람 옆으로 가 보십시오.기도의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 인격의 변화는 믿음의 발걸음에 있습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 “불보살”을 볼 줄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비”는 녹아서 작아지는 비누와같습니다
● 비누는 사용 할 때 마다 자기 살이 녹아서 작아지며
드디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 때 마다 상대의 더러움을 없애줍니다.
만일 녹지 않는 비누가 있다면 쓸모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자기 희생을 통해 사회에 공헌 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은 비누 같지만
어떻게 해서든,자기 것을 아끼려는 사람은 물에 녹지 않는 비누와 같습니다
● 이는 미국의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가 한 말입니다.
사람의 삶 중에 희생하는 삶 만큼 숭고한 삶은 없습니다.
● 희생을 바탕으로 성립되는 인간 관계는 어느 것이나 아름답습니다.
사랑이 그렇고, 우정이 그렇고,동료애가 그렇고,전우애가 그렇습니다.
비누 처럼 ..
● 나를 희생해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삶!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삶입니다.
그러나 지금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상대를 위해 할 수 있답니다.
만약 이런 마음이 없다면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 그리하기에 행복한 삶에대해 유대인의 전승은 말합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든지
어떤 경우에 처해도
배우는 자세를 갖는 사람입니다
●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이 모습 이 대로를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행복은
감사와 정비례합니다
● 헬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기를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
라고 했듯이
감사한 만큼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빌헤름 웰러는”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사람들 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행복은
소유에 정 비례하지 않습니다
감사가
없는 마음은 지옥과 같고
감사가
없는 가정은 메마른 광야와 같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