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어제 하나를 끓여 먹었는데..

◆이상한 라면◆

초등학교를 어렵게 졸업한 뒤 나는 아버지께
혼자 일하면서 공부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서울로 왔습니다.
그러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무일푼으로 이곳 저곳 골목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때 작고 허름한 인쇄소 앞에서 만난 김씨 아저씨가
내 사정 이야기를 듣고는 “우리 인쇄소에서 일하거라.
나중에 돈이 모아지면 야간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주마” 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부터 나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찬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자면서 아저씨의 인쇄소에서 일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 월급을 받았을 때 나는 라면 한 상자를 사다놓고
나머지는 몽땅 저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면상자에 손을 넣어보니 라면이 두 개밖에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 한 개를 꺼냈는데 다음날 신기하게도
라면 두 개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분명히 어제 하나를 끓여 먹었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또 하나를 꺼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도 여전히 라면은 두 개였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라면 한 상자를 한 달이 넘게 먹은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나는 하루 종일 라면 상자가 있는 쪽에서 일했습니다.
퇴근 무렵 김씨 아저씨가 심부름을 시키시기에 인쇄소 밖에서 유리창 너머로
라면 상자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아저씨가 라면상자 쪽으로 걸어가더니
품속에서 라면 한 개를 꺼내 상자 속에 집어넣고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걸어나오셨습니다.

어린 사 남매와 병든 아내와 함께
월세 단칸방에 살고 계시다는 김씨 아저씨……..
나는 그 날 아저씨의 심부름도 잊은 채
인쇄소 옆 골목에 쭈구리고 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