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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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현황

 면적: 983.584㎢ (경남 전체의 9.4%) – 경남최고, 서울의 1.6배
 임야 : 709.80㎢(72.2%), 농경지 149.45㎢(15.2%), 기타 124.23㎢(12.6%)                                                                               인구 : 총 24,180세대 47,448명 (남자 22,629명 여자 24,819명)

행정구역 및 홈페이지바로가기

1읍, 16면 , 192법정, 373 행정리

지명의 유래

조선시대 이후 호칭된 지명이다. 조선 태종 13년(1413)에 행정구역 개편 시 주가 군으로 강등되면서 합천이라 하였으며 합천은 좁은 내라는 뜻으로 이 지역이 산이 많고 들판은 없어 온통 산으로 둘러 쌓인 좁은 계곡이 많다는 뜻과 부합되는 것으로 풀이 된다.
그러나 1914년 3월에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분지를 이루고 있는 초계와 삼가가 합천군으로 편입되면서 좁은 계곡 또는 좁은 내라는 뜻은 맞지 않다하여 (세개의 고을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합천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한문식(漢文式) 표기방식은 그대로 존속하나 말할 때와 읽을 때는 “합천”이라고 한다.

연혁

선사시대
BC구석기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한 것으로 추정됨(1984~1987년 합천댐 수몰지역 거창군 임불리 지역에서 후기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굴됨에 근거).
삼한시대
BC 전 지역이 변한에 속함.
합천 각 지역에 소국(小國)들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됨
가야시대
AD 1세기경 다라국, 사이기국, 초팔혜국(산반하국) 등이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함(쌍책면 옥전고분군, 삼가면 일부리· 양전리· 동리· 소호리고분군 출토품으로 보아 고령의 대가야와 교류관계를 가지며 독립국가로서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음. 그 외에 합천읍 합천리고분군, 봉산면 반계제고분군, 저포리고분군, 대병면 창리고분군, 야로면 하빈리고분군, 월광리고분군 등의 존재를 통해 합천 각 지역에 중소 지배세력의 존재가 확인됨)

삼국시대
서기 562년(신라진흥왕23년) 대가야국이 신라장군 이사부에 멸망한 시기에 전 지역이 신라에 영속됨.- 이때 함께 멸망한 나라 이름이 <일본서기>에 임나 10국으로 기록되어 있음. 가라(고령, 대가야), 안라(함안), 사이기(합천 삼가), 다라(합천 쌍책), 졸마(함양), 고차(고성), 자타(진주), 산반하(합천 초계), 걸손(산청 단성), 임례(의령)
서기 565년(진흥왕26년) 다라국(대량국:대량이라는 지명은 다라에서 유래됨)지역 대량주가 설치.
시기 미상 적화국(야로)지역에 적화현 설치.
시이기국국지역에 가주화현 설치.
산반하국지역에 초팔혜현 설치.
대병지역에 삼지현 설치.
통일신라시대
서기 757년(경덕왕16년) 대량주가 군으로 강등되면서 강양군으로 호칭.
초팔혜현이 팔계현으로 개칭되면서 강양군에 영속.
가주화현이 가수현으로 개칭되면서 강양군에 영속.
삼지현이 삼기현으로 개칭되면서 강양군에 영속.
적화현이 야로현으로 개칭되면서 고령군에 영속.

고려시대
서기1018년(현종9년)강양군이 합주로 승격(속현 12현) (현종의 조모인 신성왕후(태조비)의 고향이며 현종이 대량원군으로 있을 때 외가인 이곳에서 살았다고 하여 주(州)로 승격시켰다고 함)
팔계현이 초계현으로 개칭되면서 합주에 영속.
가수현, 삼기현, 야로현이 모두 합주에 영속.(일시 초계현을 청계현으로, 가수현을 봉성현으로 삼기현을 마장현으로 별칭하기도 하였다.)
서기 1334년(충숙왕 복위 3년) 초계현이 초계군으로 승격.(초계출신 정수기, 변우성이 왕실에 큰공을 세워 군으로 승격시켰다고 함.)
조선시대
서기 1413년(태종 13년)합주가 합천군으로 강등되면서 야로현이 합병되었고 20개면 관할.
초계군이 초계현으로 강등되었고 11개면 관할. 그 뒤 다시 초계군으로 승격
서기 1414년(태종14년) 가수현이 삼기현과 합병되면서 삼가현으로 호칭되었고 20개면 관할.
서기 1629년(인조 7년)합천군이 합천현으로 강등됨.
서기 1644년(인조 22년)합천현이 다시 합천군으로 승격됨.
서기 1895년(고종 32년)합천군이 진주부에 속함.
삼가현이 군으로 승격되면서 초계군과 함께 진주부에 예속됨.
일제강점기
1914년 3월(총독부령 제111호)초계군, 삼가군이 합천군에 합병(당시 합천군 궁소면이 의령군으로, 삼가군 신원면이 거창군으로 편입되었으며 행정구역이 18개면으로 조정됨. 993.85㎢)
1929년 백상면과 상백면을 합쳐 쌍백면으로 개칭하고, 강양면을 합천면으로 개칭 (이때 17개면이 됨)


대한민국
1979년 5월(대통령령제9409호) 합천면이 읍으로 승격(1읍 16개면으로 됨)
1983년 2월(대통령령제11027호)적중면 권혜리, 묵방리가 의령군 부림면으로 편입(983.70㎢로 축소됨)
1987년 1월(대통령령제12007호)봉산면 죽죽리가 용주면으로 편입.
봉산면 저포리는 계산리로, 노파리는 고삼리와 술곡리로 분할 편입.
대병면 창리는 회양리로 편입(위 행정구역 변경은 합천댐 건설로 조정됨)
1989년 1월(대통령령제12557호)대양면 오산리 일부가 의령군 봉수면에 편입.
삼가면 외토리 일부가 의령군 대의면에 편입(983.40㎢로 축소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