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죽이 혼란을 급히 수습하고 겨우 성문을 다시 닫고 적을 막았다. 그러나 대장을 잃고 창고도 날아간 성에서 오래 저항하긴 힘들었고 용석이 항복하자 권했지만 죽죽이 말하길
“그대의 말이 마땅하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가 나를 죽죽이라고 이름지은 것은, 차가운 날씨에도 시들지 말며 꺾일지언정 굽히지 말라는 뜻이다. 어찌 죽음이 두려워 살아 항복하겠는가?”
결국 끝까지 싸우다 성이 함락되자 용석과 죽죽은 전사했고 선덕여왕이 이 소식을 듣고 죽죽을 급벌찬(6두품)으로 추증하고, 그의 남은 유가족을 서라벌로 옮겨와 귀족으로 살게 했다.
대야성이 비록 함락되기는 하였지만 나라를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했던 그의 충성은 신라인들에게 계승되어 결국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승화되었다.
합천 지역을 대표하는 충신이기에 조선 시대에 죽죽을 기리는 비석(신라 충신 죽죽 지비)을 세운 바 있다.그리고,지금 합천에는 “대야성”이나 “죽죽”의 이름을 붙인 행사가 많고,합천군의 공식 지역 축제인 대야 문화제에도 죽죽 장군 추모제가 포함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