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장 내암 정인홍과 임란창의사

<합천의 의병장 정인홍>

민족주의 역사학자 박은식은 “나라는 멸할 수 있어도 의병은 멸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민족은 타국에 대한 투쟁 속에서 강한 국민성을 갖게 됐으며, 특히 조선시대 의병활동은 항일독립운동의 모태가 됐다.

의병의 역사에서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임진왜란·병자호란 때이다. 그중 왜군이 침입한 길목인 경상도에서 크게 활약한 인물은 곽재우와 더불어 합천군 출신 내암 정인홍이 있다.

내암 정인홍은 1536년 합천군 가야면에서 태어났으며, 15세에 남명 조식 문하에 들어가 수학했는데 조식의 보물인 경의검을 물려받을 정도로 믿음이 두터웠다고 한다. 

정인홍이 57세가 되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평소 부음정에서 양성하던 문인집단을 중심으로 흩어진 관군, 토호들의 노비를 모아 의병을 조직했다. 5월 10일에 창의하여 의병 3,000명을 모으고 합천·고령·성주 등지를 방어했다. 낙동강 일대에서 연합전선을 만들어 왜적의 진로를 막았으며 해인사와 팔만대장경뿐만 아니라 호남의 곡창지대를 수호하는 큰 전공을 세웠다.

▲ 내암 정인홍이 후학을 양성하던 부음정

<약견산과 합천호를 품은 임란창의사> 

왜적을 격퇴했던 의병장 정인홍을 비롯한 수많은 의병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곳이 대병면 성리에 위치한 ‘임란창의사’이다. 선현들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동참한 결과 주민성금 3억 5천만원을 포함한 총 사업비 61억원을 들여 2001년에 준공됐다.

합천호 옆 산비탈 34,048㎡의 넓은 면적에 지어진 임란창의사는 가장 높은곳 부터 정인홍과 의병 113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 의병활동 업적을 엿볼 수 있는 유물관, 교육장소로 활용할 수 있는 경의당, 양손에 농기구를 들고 있는 농민의병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념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나무와 연못으로 이루어진 창의사 내부조경도 정돈되고 아름답지만 창의사에서 보는 악견산과 합천호는 웅장함마저 느끼게 한다.

▲ 임란창의기념관 기념탑 중 농민의병 조형물

<이름 모를 의병들을 기억하다>

매년 5월 10일이면 정인홍 의병장의 창의일을 기념해 제향행사가 거행된다. 올해는 제22회 추모제가 임란창의사에서 올려졌다. 합천임란창의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진행되는 추모제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위기에 놓인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선 창의장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제례행사로 내암 정인홍 선생 과 의병에 대한 애국혼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다. 

추모제 행사가 아니더라도 임란창의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사당에서 향을 피워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는 데 동참할 수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왜군의 조총에 맞서 붓과 호미를 던지고 죽창과 삽을 들고 일어난 의병장 정인홍을 비롯한 이름 모를 충성스럽고 의로운 이들을 한 번쯤 떠올리며 창의사 계단을 올라보는 것은 어떨까.